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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지낚시의 역사에 대한 고찰


낚시는 인류 생존을 위한 어렵의 한 수단으로 발전해 왔다. 낚시는 구석기 시대부터 해 왔던 고기 잡이 수단이며, 신석기 시대에도 석제 바늘, 뼈바늘, 조개껍질 바늘 등 여러 가지 낚시 도구 유물 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우리나라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 유적에서도 돌바늘이 출토되었고, 남해안 일대에서도 결합바늘이 발견되는 등 석기시대 낚시 관련 유물은 많다. 이같이 낚시의 연원은 오랜 것이다.

그러나 낚시행위 자체에 대한 우리 기록은 삼국시대에 비로소 나온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석탈해왕 (BC 19~80)조에 ‘탈해가 처음에는 낚시로 고기를 잡아 어머니를 공양하였다(脫解, 始以漁釣爲業, 供養其母)’는 기록이 나온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大祖大王 7년(AD 59년) 4월조에 ‘왕이 고안 연에 가서 魚釣를 보다가 붉은 날개달린 백어를 얻었다(王如孤岸淵觀魚釣, 得赤翅白魚’라는 기록 이 있다(이병도 역). 이병도씨는 孤岸淵을 고유명사로 보았고, 觀을 ‘보다’로 해석하였다. 觀은 본다는 뜻 외에도 ‘나타내 보이다’라는 뜻이 있다. 왕이 고기잡이에게서 물고기를 얻은 사실이 무엇이 중요하다고 사기에 기록된 것일까? 실제 왕이 조용한 소에 가서 낚시를 한 것이 아닐까? 낚 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

‘왕이 홀로 조용하고 으슥한 소에 가서 낚시로 고기잡이를 해 보이 다, 붉은 지느러미가 달린 백어(강준치?)를 잡다’로 새길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석탈해왕은 전업 낚시꾼, 대조왕은 취미 낚시꾼의 기록상 효시가 된다. 그럼 석탈해왕과 대조왕이 어떤 종류의 낚시 를 하였을까? 낚시를 했다는 기록이 있어도 조법에 대한 기록은 근세에 들어서야 나온다.

우리나라 선사시대의 낚시 유적은 바닷가뿐만 아니라 강원도 양양, 인제 등 내륙 강계에서도 발견 되고 있어 석기시대에 이미 바다낚시와 담수낚시가 같이 발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담수 계 낚시로는 호소.담수 낚시와 강물에서 하는 계류낚시가 공존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호수와 강의 물 흐름이 없는 곳에서는 오늘날의 붕어낚시와 유사한 조법이 발전되었을 것이며, 계류에서는 흘림 낚시가 발전하였을 것이다.

견지는 얼레에 긴 낚싯줄을 감아 하는 낚시이다. 얼레와 긴 줄을 사용하는 낚시는 세계 여러 곳에 서 성행하고 있다. 그러나 얼레를 감았다, 풀었다 하며 낚싯줄 길이를 수시로 조정하여 물고기가 서식하는 곳을 능동적으로 찾아가고, 물 흐름의 강약에 따라 추를 조정하여 잡고자 하는 물고기를 찾고, 물고기 서식 습성에 따라 계류의 표층. 중간층. 바닥을 자유롭게 탐색하여 목적하는 어류를 포획하는 과학적이며, 교묘한 조법은 우리 견지낚시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견지낚시는 우리의 전통낚시이며, 세계에 자랑할 고유기법인 것이다.

낚시 기법의 발전과정에서 볼 때 견지낚시는 강계 계류의 흘림낚시에서 파생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낚시, 흘림대낚시의 한계인 줄의 길이를 극복하고, 얕은 곳에서 낚싯바늘을 흘려 고기가 노는 깊 은 물로 찾아드는 견지낚시는 붕어낚시와 같은 호소낚시와 여울 흘림낚시에 비해 훨씬 발전된 기법 이다. 또 여울견지에 비해 배견지는 더욱 발전된 모습이다. 그러나 견지낚시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또 고대 견지낚시의 모습이 어떠하였는지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견지낚시의 역사가 얼마나 오랜 것인가에 대해서는 견지인 모두가 궁금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 작 고한 견지인 송우씨는 견지낚시의 역사를 500여 년으로 보고 있다. ‘견지낚시가 고려시대에 시작 되었다.’는 한형주 박사의 구전에 근거를 두고, 겸재의 ‘소요정’도를 중심으로 비정한 것이다.

현재에 알려진 견지관련 자료 중 가장 연대가 오랜 것은 謙齋 鄭繕의 ‘逍遙亭’ 그림이다. ‘소요 정’도는 한강 공암(孔巖) 부근의 산수를 그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이다. 그림에 벼랑이 있고, 왼편에는 두 개의 바위가 물 속에 서 있다. 바위와 벼랑 앞에 떠 있는 배 이물과 중간에 두 사람이 앉아 커다란 견짓대를 들고 낚싯줄을 강물에 드리우고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앞에 있는 인물은 오른 손으로 견짓대를 들고 왼손은 뻗어 줄을 잡고 있는 모습(‘줄목’을 잡은) 이며, 현재의 ‘시침낚시’가 성행하기 이전에 하던 ‘맥낚’ 혹은 ‘앉을낚’ 모습을 묘사한 것이 다. ‘소요정’이 그려진 시기는 대략 1742년 전후이며 묘사된 상황으로 미루어 당시에 이미 배견 지낚시 기법이 완숙한 상태로 정착되어 있었던 듯하다.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에 견지낚시가 이미 한강에서 성행한 낚시였다면 견지의 역사는 더욱 오래 전부터인 것으로 추정되며, 견지낚시가 고려 시대에도 있었다는 구전도 상당한 신빙성을 가지게 된다(상세한 내용은 소요정 글 참조).

견지낚시에 대한 다른 기록이 있다. 서유구(徐有?: 1764~1845년)가 지은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 와 전어지(佃漁志)에는 견지낚시와 관련하여 ‘류조법(流釣法)’, ‘삼봉낚시법(三鋒釣法)’ 두 가 지 조법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오늘날 ‘설망’쓰는 것과 같은 ‘밑밥을 주어 물고기 모으는 법( 投餌聚魚法)’이 나온다.
류조법에는 얕은 여울에서 물의 흐름에 따라 고기를 잡기 때문에 흘림낚시(流釣)라고 한다고 기록 되어 있다. 오늘날 견지채의 원형과 같은 기구(方匡)가 나오며, 봉을 달고 청벌레 등 생미끼를 쓰 는 여울 견지를 묘사하고 있다. '난호어목지'는 1820년에 저술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저자가 평 생 모은 자료를 정리한 것이라는 점에서 1800년을 전후로 한 당시의 낚시 방법을 묘사한 것으로

유 추할 수 있다. 또한 묘사된 기법이 새로운 것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상황을 기록한 것 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견지낚시의 연원은 오랜 것으로 추측 된다(상세한 내용은 류조법 글 참조).

1942년 일본 아사히신문사(朝日新聞社)에서 발간된 釣技百科에도 견지낚시 연원에 대한 기록이 있 다. 조기백과에는 견지의 간략한 연원, 견지의 구조, 특성과 함께 낚싯줄, 미끼, 밑밥 그리고 낚시 법과 함께 견지채, 바늘 채비, 종대의 그림이 실려 있다. 견지의 연원에 대해 “견지는 지금부터 대략 150년 전에 평양의 낚시꾼인 홍 아무개 씨가 창의로 만들어 낸 것이라 하는데, 지금은 전국적 으로 보급되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상세한 내용은 조기백과 글 참조). 이 글이 1935년경에 써 졌다고 보면 견지는 1785년경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미 1742년경에 그린 소요정 그림이 있 어 가장 오래(最古)된 기록으로 보기 어렵고, 명확한 근거도 없다. 따라서 대동강 ‘홍씨 설(洪氏 說)’도 구전에

의한 ‘설’에 불과하며, 견지 역사가 상당히 오랜 것이라는 가능성만 엿보게 하고 있다. 다만 ‘홍씨설’은 당시에 견지낚시에 대한 새 기법의 발견이나, 새 도구의 개발을 말한 것 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어쨌든 견지낚시에 대한 가장 오랜 사료는 1742년의 소요정 그림으로 260년 전 것이다. 또한 기법 발전이라는 면에서 볼 때 배견지보다 류조법은 시작 연대가 더 오랠 것이다. 그리고 당시 견지낚시 가 이미 완벽한 기술체계를 이루고 있어 오랜 기간을 두고 발전해 온 것으로 보인다. 옛날의 기술 발전 속도가 지금보다는 늦어 하나의 낚시 기술체계가 정립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으 로 미루어 견지낚시의 연원은 1700년대에서 수백 년 더 과거로 소급될 가능성도 있다.

견지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도 아니며, 누가 창안해 낸 것도 아니다. 오랜 기간 낚시꾼의 기 법이 쌓이고, 발전되어 오늘의 견지낚시가 된 것이다. 따라서 견지의 역사가 몇 백 년이라고 똑 불 어지게 비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불가능할지 모른다. 여러 자료와 정황을 미루어 추측할진대 견 지의 역사를 거슬려 올라가면 원시적 형태는 고대까지 소급이 가능하다. 그리고 현재 견지낚시의 형태를 띤 것도 수백 년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견지의 역사를 더 상세히 알고, 연원을 더 소급해 보기 위해서는 여러 견지인의 노력이 필 요할 것이다. 견지인 모두가 현재 성행하는 견지낚시의 원형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기 위해 노력해 야 할 것이며, 배견지. 여울견지. 얼음견지 등 견지낚시의 기법 분화에 대한 사적 고찰이 이루어져 야 할 것이다. 또한 현존하는 견지 사진 등 관련 자료에서 기법, 도구, 복장에 대한 생활사적 고찰 이 이루어져야 하며, 견지 관련 새로운 사료의 발굴과 그 해석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즐기고 사랑하는 견지낚시의 연원을 알고, 역사를 더 밝혀나가는 것은 우리 고유낚시인 견 지의 전통을 확고히 세우고, 세계화를 가능케 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 자료제공 이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