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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07-30 16: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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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성문
 조회 : 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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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길 물 속도 알 수 없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던가. 사람의 속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다단하여 쉽사리 가늠하기 어려운데서 비롯된 속담일 것이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무한 크기의 속내와 자식의 부모를 향한 얕기로 따지자면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마음 씀씀이가 그러할진대 하물며 나와 무관한 사람들의 속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러나 흔히 이러한 인간의 속내와 자주 비교되는 한 길 물속도 아무렇게나 우습게 볼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통감하였다.
한 달여 간 지속되던 여름 장마전선이 한반도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주말 쯤 남하하면서 중부지방에 마지막 2내지60밀리 정도의 비를 뿌릴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흔히 여름 장마는 황소 잔등 위에도 진자리가 있는가하면 마른데도 있기 마련이다. 자칫 과학예보를 불신하는 오만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그만큼 자주 오르내리거나 좌우를 넘나드는가 하면 며칠씩 소강상태를 유지하기도 하는데서 비롯된 불감증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번 요행을 맛 본 사람들은 자칫 교만해져서 예보를 무시하고 일정을 강행하기도 하고 심지어 산간 계곡에 야영을 하면서 사전 대피방송을 비웃기라도 하듯 꿈쩍을 않는다는 보도에 어이가 없을 정도이다.
단위 시간당 100밀리가 넘는 비가 두 세 시간만 퍼부으면 그야말로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따른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 아닌가. 더욱이 기상대조차 예측하지 못한 게릴라식 장대비니 국지성 호우니 하는 것이 부쩍 늘어난 요즈음 아직도 그런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이 정도라면 자연은 인간의 이러한 오만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은 자명하기 때문에 이미 사고는 예견이 가능해진다.
“열심히 일한 당신은 떠나도 좋다”는 방송매체의 카피가 생각나는 주말이면 온몸이 쑤셔대고 마음은 이미 강과 산을 헤집고 있는데 일기예보가 거슬리고 아내의 핀잔이 발목을 잡는다. 수년 전에도 두어 차례 경험을 한 적이 있기에 막상 거스를 자신도 없어 망설이고만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삼복에 서두를 이유가 있었어. 뭐. 알리기도 뭣하고 오는 길이 있으면 들리게]
초등학교 동창생 녀석은 나지막한 목소리는 괜스레 미안한지 잔뜩 가라앉았다. 이런 흉년에 어거리풍년을 마다할 리 없는 터라 속으로 쾌재를 불렀음은 물론이다. 정장을 챙겨 뒷좌석에 걸고 간편복 차림으로 고향을 찾았다.
견지낚시를 우정 하여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장마전선이 북쪽에서 중부로 내려온다고 하니 일단 영월은 12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보여 아이스박스에 구더기를 챙겼다. 일단 친구를 찾아 위로 겸 축하를 하고 몇 잔 더하자는 초동친구들을 뒤로 하고 강가로 나갔다. 옥동천이 정양으로 흘러드는 가제골은 물이 맑고 적당한 유속과 수심으로 어린 시절 즐겨 찾는 곳이었다. 주차를 한 다음 강심을 살펴보니 레프팅이나 물놀이를 하는 사람은 많았으나 정작 견지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재수가 꽤 있는 날이구나.” 하고 내심 즐거웠다.
우선 견지세계에서 배타적인 영토(領土)임을 알리는 수장대를 꽂기 위해 물 바닥을 살폈다. 적당한 수심을 골라 여울이 멎으면서 본류로 흘러드는 곳이 장마 끝 무렵의 포인트 선정요건이다. 그러나 유속이 지나치게 빠르고 본류와 합류되는 지점은 소용돌이가 아주 컸다. 잔 여울과 경계를 이루는 지점은 강심으로 흘러들면서 큰 와류(渦流)를 이룬다. 게다가 물 바닥은 여태껏 물 바깥이었다가 새 물이 유입되면서 불어 잠긴 전형적인 겉돌 물이다. 지류를 샅샅이 살폈으나 무릎도 안 차면서 유속은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거세다. 평소의 기억을 더듬어 물 속에 손을 넣어 원 바닥의 돌을 찾아 들었다.
알맞은 청태 그리고 수서곤충(水棲昆蟲)의 알이나 유충을 확인하는 것이 낯선 곳에서의 포인트 선정 습관이다. 왜 한산하였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만만한 수심은 몸을 가누기 어렵고 하류의 합수머리는 수심이 깊어 접근이 불가능하였다. 별 수 없이 여울 가장자리의 허리까지 차는 폭이 넓은 와류에 수장대를 꽂고 채비를 흘려 넣었으나 전혀 입질이 없었다. 수장대를 그 자리에 두고 손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유인용 미끼를 몇 차례 뿌려 유인을 하였으나 한 시간이 넘도록 소식이 없었다.
해 걸음에 춘천으로 돌아오면서 허전하고 야속한 생각이 들었으나 어쩌랴. 휴게소에 들러 얼음과자를 씹어서 삼키니 목구멍이며 뱃속까지 시원해졌지만 마음속은 여전히 성에 차지 않았다. 즐거울 리 없는 고속도로를 주행하면서 횡성을 지나 홍천 IC쯤 오다가 퍼뜩 홍천강을 떠올렸다. 하늘은 여기저기 비루먹은 소 등허리처럼 먹장구름이 드문드문 떠 있었다.
[내일 오후 서울 경기 남부와 강원 철원 지역에 예비 호우주의보를 발표하였습니다.]
아직 중부지방 까지 도달하려면 24시간 전이라는 이야기이다. 아무런 주저 없이 그대로 되룡골 민박촌을 지나 미리 보아두었던 황새여울을 찾았다. 상당히 시간이 경과하였고 유명세를 타고 있는 그곳은 목이 좋은 포인트는 이미 선점(先占)을 한 견지인이 시침질을 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50미터 이상의 거리와 물 흐름세가 다른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아뿔사 완만한 유속으로 깊을 것 같지 않던 수심은 가슴까지 올라오고 물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낸 바위는 타이타닉처럼 물속에 멍석처럼 골과 이랑을 이룬 것이 아닌가. 유속 또한 겉으로 본 것과는 차이가 있었고 수심은 들쭉날쭉하였고 걸핏하면 밑 걸림이다. 물 흐름세는 라이(Lie)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제멋 대로이다.
일단 물 흐름에 채비를 흘려 와류가 약해지는 곳을 골라 채비를 감으면서 가볍게 손목으로 터치를 하듯 시침질을 하였다. 씨알이 작은 피라미 몇 수를 건진 다음 엉킨 채비를 풀다가 흠칫 놀랐다. 하늘은 높은 구름이 북동진을 하고 군데군데 햇살이 비치고 있는데 여우비치고는 굵은 빗방울이 후득거리다가 급기야 만만치 않은 품세로 쏟아 붓는다.
어느새 전신을 적시는 비를 피할까 하다가 “여름비 두세 차례 하다가 말겠지”하고 계속 시침질을 하였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빗 가락은 점점 굵어지더니 분간을 할 수 없는 시야에 하늘마저 온통 시꺼멓다. 그때 언제인가 겪었던 회오리 바람소리가 강류를 타고 귓전을 스친다. 순간 섬광이 번뜩이고 먼데서 우레 소리가 들려오고 강가에 쳐두었던 그늘막이 강물로 날아들고 텐트가 뽑혀 날라 갔다. 여기저기 물놀이용 튜브가 공중을 날고 먼지와 쓰레기가 회오리를 타고 오른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채비를 걷고 수장대를 뽑아들고 뭍을 향해 걸음을 떼었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고 섬광과 우레는 아주 가깝게 들렸다. 순간 수장대가 꺼림칙했다. 벼락의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대로 두고 나왔다가 잠잠해 진 다음에 다시 가지러 올까 하다가 수장대를 지팡이 대신 짚지 않고는 도저히 발걸음을 뗄 수 없는 바위 밭을 지날 생각을 하니 어찔했다.
큰 여울을 건너다가 흠칫 놀랐다. 물은 그 새 불었는지 가슴까지 차올랐다. 조심스럽게 수장대를 꽂은 다음 걸음을 떼었으나 걸치고 있던 구명조끼의 부력(浮力)에 중심을 잃고 물 흐름에 휩쓸렸다. 일순 관급(官給) 휴대폰이 걱정되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지라 유사시 장비를 버리면 급류에 휘말린다고 해도 생존 수영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휴대폰의 수장(水葬)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한계수명에 다다르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목 밑까지 차오른 물에 둥실 뜨면서 물 흐름에 일단 몸을 맡긴 다음 강가로 나왔다. 장비를 하나도 버리지는 않았지만 물에 잠겨 엉망이 되었다.
잰 솜씨로 장비를 갈무리하고 웨더와 조끼를 벗고 옷을 갈아입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젖은 옷을 털어 세탁기 앞에 갖다 두고 샤워를 한 다음 다시 집을 나섰다.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하고 없었다. 천둥 번개를 섞어 치던 하늘은 서북쪽부터 희끄무레하게 밝아졌다. 강촌 다리 밑이다. 언제인가 한번 히트했던 그곳은 역시 사람이 없어 독무대였다.
그러나 물밑을 바라보고는 이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암호에서 발전용 방류로 여울은 살아 있었지만 물 빛깔은 완전히 진흙물이었다.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북한산 등산객이 입산통제를 무시하고 무리한 산행을 하다가 등산용 스틱에 벼락을 맞아 그 자리에서 숨지고 정상 부근의 3명과 70미터 떨어진 계곡물에 전류가 흘러 부상을 입는 등 사고가 있었습니다.]
자동차 라디오로 듣는 뉴스는 저녁에 TV로도 이어졌고 탈레반 뉴스보다 우선순위를 확보하였다.
[큰 고목이나 높이 솟은 바위, 그리고 산의 정상이나 광활한 평지에서 쇠붙이로 된 우산 꼭지, 골프채, 카본섬유소재 낚싯대와 같은 것은 벼락이 좋아하는 표적입니다.]
젖은 옷을 세탁조에 넣은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아내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벼락 치는 날 물 속에 있는 것 안 좋다 잖아요?]
찔끔했다. 견지 꾼의 수장대가 낙뢰(落雷)의 유도체(誘導体)가 된다는 사실을 아직 아내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2007.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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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지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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