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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06-12 10: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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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성문
 조회 : 4,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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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 유감(有感)
6월 9일 그동안 지칠 대로 지친 머리를 쉬지 않으면 쥐가 날 지경이었다. 그동안 하루 종일토록 문서작업을 해 댄 여파일까. 말이라고는 해 볼 기회를 우정 차단하고 죽을 각오로 쳐댔더니 드디어 어깨 죽지가 비명을 질러댄다. 이른바 골격계 증후군이다. 주원장은 쉬면 나으니 걱정 말란다. 제기랄 그런 소리는 누가 못할까. 혹여 노상 입에 붙어있는 단어의 구사조차 쉽지 않은 요즈음 심각한 언어장애 현상이 아닐까.
치료약은 없다고? 내심 처방을 모를 리야 없지만 일단 미끼를 장만하고 고속도로를 오가면서 보아 둔 홍천강 휴게소 밑을 가보기로 하였다. 북방에서 온천 쪽으로 가지 말고 도사곡으로 가라고 한다. 물길을 따라 가는 길조차도 비포장으로 1킬로 남짓 내려가니 여울이 보인다. 도로 쪽을 올려다보니 홍천강 휴게소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옳거니 바로 이 곳이로구나 싶어 부리나케 강변으로 내려갔다. 우선 설망에 밑밥을 채우고 수장대를 들고 들어서다 물빛을 보는 순간 찜찜한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아뿔싸 청태도 아닌 생활하수에 섞여 흘러나온 부유물이 침전되어 두껍게 층으로 내려앉은 게 아닌가. 분명히 휴게소에서 망원경으로 내려다 본 강물은 맑고 내가 좋아하는 모래 띠가 길게 수직으로 내려 간 곳이 있었다. 그래서 이곳의 지리를 잘 아는 직원에게 물어서 찾아 온 이곳이 아니었던가.
실망을 금할 길이 없었다. 잡는다고 하여도 고기는 릴리즈를 해야 할 것이고 식용은 찜찜하다. 더욱이 편광안경으로 들여다 본 시계는 바닥을 간신히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이다. 후배는 아예 피라미 채비를 하고 노느니 염불이라도 하겠다고 한다. 도무지 내키지 않는다. 장마 뒤끝에 의암댐 밑의 물이 숨이 콱콱 막히도록 차갑고 황토 빛이 채 가라앉지 않아도 견지가 되는 것은 시계의 확보가 아니었던가.
아니나 다를까. 바닥을 훑어도 누치는 아예 비치질 않고 목줄을 수심에 맞춰 짧게 한 탓인지 겨우 마자 한 마리를 올렸을 뿐이다. 불거지와 피라미는 체면도 없이 달려들었으나 한번 떠난 마음을 달랠 수는 없었다. 빵으로 점심을 때운 후 조심스레 후배의 의향을 물었다. 쉽게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목표인 의암댐 밑의 광판리 지류는 승용차로도 건널 정도라면 발전만 하면 여울은 좋다. 그러나 그곳은 9021 소나타 어르신의 단골 터이고 혹시 안 나오시면 둘이 들어가기에 적합한 꺼진 여울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어르신은 오랜만에 아들 손자가지 대동하고 한껏 솜씨를 보이고 있었다.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시간이 꽤나 흘렀기 때문이다. 제트 스키가 윙윙거리고 여자 친구 앞에서 치기(稚氣)를 부리는 젊은이들이 수시로 물제비를 날리는 강촌 다리 밑을 향했다. 오후 세시가 넘었기에 더 이상의 포인트 탐색은 의미가 없었다. 그저 맑은 물에서 견지를 흘릴 수만 있다면 조과는 상관치 않으리라는 다짐을 두고 차를 내려 물 안으로 들어갔다. 물은 역시 몹시 차가왔다. 비닐봉지에 담아 온 쓰던 밑밥을 달아 던져 넣고 수장대에 고리를 걸었다. 약간 무거운 채비로 50센치 가량의 목줄에 빙어용 미끼는 3마리 혹은 네 마리를 달아 흘렸다.
언제나 시작은 성미 급한 피라미와 갈겨니가 먼저 달라붙는다. 그래도 나무라고 싶은 생각일랑은 없다. 홍천강 휴게소 밑에 비하면 신선이 따로 없었다. 사발이가 강변의 얕은 물을 가로지르며 앵앵거리고 제트 스키의 굉음이 거슬려도 참을 만하다. 까짓 시끄러운 게 뭐가 대수이랴.
후배는 싱글벙글이다. 게다가 약간은 피쿼리즘 을 연상케 하는 그의 과시욕은 그예 몰려든 구경꾼들과 금새 메타 커뮤니케이션 을 주고받는다. 불거지 한 마리를 끌어내는데 온갖 정성을 다한다. 양손을 높이 치켜들고 구경들 앞으로 돌아서서 춤사위를 벌였다. 구경꾼들이 처음 보는 광경에 좋아라 탄성을 지르고 어린 아이들은 물 안으로 첨벙거리며 들어선다.
그때, 담배 한 대를 꺼내 물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불을 붙이다가 흠칫 놀랐다. 설장에 감긴 줄이 소리를 내며 풀어지고 있었다. 후배는 구경꾼들과 동화되어 묻고 답하면서 여유를 부렸다. 그들을 등지고 선 나는 천천히 놈이 하자는 대로 좌우로 그리고 차고 오르면 빠르게, 완강하게 버티면 마루대의 탄력으로 저항을 상쇄하면서 줄을 감았다. 휘는 품세로 보아 멍짜로 짐작이 되었다. 이윽고 편납을 감은 고무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바닥을 이리저리 기는 놈의 형체가 눈에 들어 왔다. 예감이 맞았다. 좀체 등을 보이지 않고 보채는 폼이 마지막 안간힘이리라. 그제서야 손을 높이 치켜세우고 겨루기에 들어갔다.
후배는 이미 줄을 감아든 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고 그를 응원하던 써포터즈들은 수근대며 고요를 삼키고 있었다. 드디어 버티던 놈이 허연 배를 돌려 누운 채 입을 끔벅거릴 생각도 없이 처연한 눈빛을 보낸다. 순간 나는 눈을 의심하였다. 놈의 두터운 입술에 박힌 바늘의 위치가 믿어지지 않는 곳이었다. 오너 쉐이코 6호 바늘은 입술 우측 가장자리에 그다지 깊숙하게 박힌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밑으로 손을 넣어 놈의 아가미 밑을 움켜잡으려 했으나 한 웅큼이 넘는다. 낭패였다.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녀석이 안간힘을 쓰는 게 아닌가. 검지를 아가미에 쑤셔 넣고 엄지손가락은 놈의 뱃살을 거머쥐고 웨더에 붙였다.
몰려 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를 지른다. 일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혀 예기치 않은 이들은 2~30명은 족히 되는 것 같았다. 때 아닌 써포터즈를 만난 엉너리를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바늘을 빼면서 가늘게 손이 떨림을 의식한 나는 멋쩍은 웃음을 감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놈을 고리에 걸어 물위에 띄우고 채비를 살피니 이미 엉망이었다. 목줄을 갈고 바늘을 맨 다음 다시 흘려보냈다. 후배도 질세라 춤을 추듯 손목 스냅으로 채비를 흘린다. 속으로 이번에는 후배에게 기회가 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관객을 의식하는 그가 이미 단 한번에 쥐떼 몰리듯 하는 구경꾼들의 변절에 마음 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 어쩌랴. 야속하게도 그런 나의 진솔한 바람은 저주를 몰고 오고야 말았다. 또 다시 휘청하는 마루대의 감각으로 보아 크기는 어림하기 이르나 분명히 거센 녀석의 입질이었다. 만만찮은 저항으로 보아 쉽지 않은 상대임이 분명하다. 낭패가 아닌가. 순간 후배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견지대를 후배의 손에 들려주고 후배의 견지대를 내가 잡으면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거의 자연스런 임무교대로 순간적이어서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였다.
후배는 우정 두어 걸음 물 바깥쪽으로 걸음을 옮긴 뒤 새삼스런 손 사위를 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구경꾼들도 후배가 일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숨을 죽이고 보고 있었다. 반 여울 견지라 한 번 푸닥거리를 했으니 손으로 밑밥을 조물락거리면서 생미끼 몇 점을 집어 흘리기를 서번 번 할 무렵 가볍게 저항이 오다가 멈춘다. 다시 슬쩍 뜸을 주었다가 당기는 순간 거센 입질을 느꼈다. 후배는 바로 코앞에서 씨름을 하고 있었다.
시간차를 두긴 하였으나 동시에 히트를 하는 것은 좀체 드문 일로 줄이 엉키는 것을 방지하려 방향을 수심 가운데 쪽으로 틀었다. 처음 흘릴 때야 나란히 서서 감고 당기니까 일정한 간격으로 벌어지지만 일단 히팅을 하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불규칙한 접근과 반발이 제멋대로이니 온 신경을 집중하여야 한다.
바로 그때 염려를 하던 일이 벌어졌다. 평소 1호 원줄과 0.8호 목줄을 선호하는 내 견지채비는 불필요한 멋을 필요로 하는 연출자에게는 강한 채비가 아니었다. 목전에서 모습을 보고 본의 아니게 돌려보낸 녀석의 크기는 물의 두께만큼 볼록렌즈 효과로 크게 보이고 심리적으로 느끼는 체감(體感) 크기는 두 배가 되지 않는다던가. 탄성을 지르는 관객을 의식한 후배는 테니스 선수 마냥 견지채를 물위에 내리치며 감정 이입(移入)을 하고 있었다. 순간 내 자식의 종아리에 회초리질을 하는 느낌을 받았다. 묵묵히 힘을 빼어 아가미를 움켜 쥔 손이 가늘게 떨려 옴을 느끼면서 놈을 물 위에 놓아주고 줄을 감아 채를 건넸다. 받아 들은 견지 채를 두어 번 물위에 턴 다음 거치대에 올려놓고 대를 바꾸어 들다가 시계를 보았다. 여섯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묵묵히 채를 들고 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담배를 피워 든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2007. 6.10)
주 1) 피쿼리즘 (piquerism,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과시욕에 젖어 있는 현상이나 의식세계를 일컫는 말로 신조어(新造語)이다.)
주 2) 메타 코뮤니케이션(meta communication)눈에 보이지 않는 초 감각적인 의사연락 수단으로 일컬어지며 감정을 이입(移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주 3) 뫼비우스의 띠 (수학, 왼쪽으로 도는 것과 오른쪽으로 도는 것의 구별이 없는 곡면(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은 곡면)이다. A. F. Möbius(1970)가 처음 지적하여 뫼비우스의 띠라고 불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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